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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에 해당되는 글 2

  1. 2018.03.05 한국의 고대문명
  2. 2018.03.05 한국의 고대역사
2018.03.05 21:03 분류없음

홍산문명은 무엇일까?

홍산문화는 기원전 4000~3000년경 랴오닝성 선양일대에서 발생한 문명으로 한반도와 북방민족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문명이다.

홍산문명의 대표적인 유물이 빗살무늬토기와 적석총(돌무지무덤)인데

적석총은 고구려 집안의 대량 고분이 돌무지 무덤이며 백제의 서울 석촌동에서도 적석총이 발견된다. 홍산문명이 삼국초기시대까지 나타난다.


고조선은 어떤 종족의 나라였나?

고조선은 여러북방종족이 섞여있었는데 그중 중심세력을 예맥족이라고 본다.

이것은 단군신화에 나타나는데 천신족이 곰을 숭배하는 맥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예족을 통합하였다는 것이다.


고조선은 현존했을까?

우리는 청동기시대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우리의 역사로 보는 이유는 비파형동검, 빗살무늬토기, 고인돌이 한반도일대와 북방에 널리 퍼져있는것을 그대로 확인 가능한 역사이기때문이다.

동일한 청동기문명을 공유하고있는 지역을 고조선의 영역으로 본다.


고조선시기 한반도에는 누가 살았나?

이시기 한반도에는 낙랑군, 동예, 옥저, 마한, 진한, 변한 이 존재했다.

이들을 설명할때 우리는 항상 부족국가 연맹체라고 설명한다. 국가적으로 중앙집권정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의미다.

부여의 정치집단이 한반도로 내려와 중앙집권체계를 갖춘 국가를 건국하면서 삼국시대로 넘어가게된다. 한반도의 지배계층이 북방민족이였을것이다.


고조선의 멸망은?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 왕검성에서 멸망하게 된다.


부여는 어떤 국가인가?

부여는 고조선의 구성원이었던 예맥족중 부여족이 현재의 하얼빈 일대에서 기원전 2세기부터 494년까지 존재했던 한민족의 고대국가다.


신라인은 어디서 왔는가?

신라의 금관을 보면 나무와 사슴뿔이 형상화 되어있다. 이것은 북방 스키타이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것이라고 한다.

신라의 지배계측이 스키타이인이라는 주장이 강하고 스키타이인은 카자흐스탄, 이란계 백인 족이다. 이런 의문의 연장선에서 신라인이 흉노족이라는 주장도 있다.

흉노족의 후예는 몽골족이며 나중에 원나라를 세우면서 중국을 지배하게 되는 민족이다.

그 증거가 말에 걸고다니는 스키타이형 동복이 흉노족과 신라인에게서 동시에 발견되는것과 이란의 금관형태가 신라금관과 유사한점, 사슴숭배와 기마민족이라는 등등의 유사점이 발견되는것이다.

신라의 고분에서 발견되는 페르시아인 문관상과 신라괘릉의 무인상또한 연관성을 생각해볼수 있다.


가야는 어디서 왔나?

가야는 가야연맹국가였지만 함께 존재했던 신라와 매우 유사했다고 한다. 

잘알려진대로 철기문화가 꽃을 피운곳이며 6세기에 멸망하게된다.


기와집은 언제부터 짓게 되는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기와유적은 평양 낙랑유적지에서 출토된 2세기경 점토기와로 이시기에서부터 왕궁에 목조기와집이 최초로 지어졌을것이다.

가야의 경우 6세기 중반 말기에 왕궁이 나타나며 그전까지 왕궁또한 초가집이였다고한다.사실 거의 자료를 보면 선사유적지수준의 움집같이 보인다.

당연하게도 왕궁을 제외한 모든 집은 초가집이였을것이다.

posted by 오픈아크 리더스 오픈아크
2018.03.05 21:02 분류없음

중국땅에는 현재 56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있고 130종류의 언어가 사용중이라고 한다.

인도의 경우에도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고 191개의 언어를 사용한다고한다.

과거 유라시아 대륙에는 얼마나 많은 종족이 있었을까?

현재에도 이렇게 다양한데 문화적 교류가 더욱 적었던 과거에는 셀수도없는 종족과 언어가 사용되었을것이다.


역사는 무엇일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알아야한다. 

중국의 역사시대는 삼황오제시대에서 삼황시기는 검증이 되지 않았고 5제중 첫번째 황제를 역사시대의 시작하는 왕이라고 한다.


역사는 기록되어있어야한다. 그렇다보니 민중의 기록은 사라지고 왕들의 기록을 역사로 기억된다. 그리고 후대의 기록이더라도 검증이된것을 역사라 한다.


기록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기록을 하려면 문자가 있어야한다. 아시아의 문자는 갑골문자다. 

갑골문은 중국역사상 상나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갑골문자는 왜 만들어졌을까?

신석기부터 거북이 배딱지에 점을 쳐왔던 고대인은 기원전 1600년~1046년에 존재했던 상나라시기에 점을 치고 난 결과를 배딱지에 세겼다. 이때 세겨진 문자가 바로 상형문자인 갑골문자였다.


역사를 이해할때 반듯이 알아야하는것이 그시대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는것이다.

어떤집에서 어떤것을 먹고 입었을까? 그리고 이것을 알아보기위해서는 발굴된 유적을 공부해보면 알수 있다.


갑골문을 사용하던 상나라 사람들은 은허라는 지역에서 존재했는데 발굴된 은허유적을 보면 청동시기대로 마차가 발견되고 다양한 토기들이 그대로 발견된다. 


1600년전 중국 은허에서 상나라가 존재할때 북방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한반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바로 이시기에 우리나라 역사인 고조선이 존재했으며 한반도에도 청동기유적이 만들어지고 토기를 만들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 몽골 초원에서 다양한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유목생활을 하였을것이다. 


이당시 몽골초원, 랴오닝성일대의 홍산문화, 하얼빈일대 등등에 다양한 북방 민족이 존재한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농경민족과 유목민족과의 경쟁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농경민족인 한족이 전체역사의 50%를 북방민족인 유목민족이 50%의 역사를 차지한다.

한반도의 경우 고구려와 백제가 유목민족인 부여세력이 남하하면서 지배층이되었고

신라는 더 멀리서온 흉노족 설이 설득력이 있다.


신라의 시조 김일제는 누구일까?

김일제는 기원전 100년경 사람으로 중국 북부의 흉노족 번왕의 왕자였는데

전한시대 무제가 실크로드 건설을 목적으로 흉노소탕작전을 편다. 이때 흉노 소탕중에도 김일제의 능력을 알아보고 인재로 등용을 하였다. 하지만 전한의 외척인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우지만 14년만에 멸망하게 되는데 이때 왕망의 세력이였던 김일제의 후손들이 피난민이되어 신라땅까지 왔다는것이다.


신라 김일제 시조설은 사실일까?

이것은 논란이 많은데 역사스페셜에서 다양한 논리로 분석하게되는데 매우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마민족인 신라가 유목민적인 성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성씨가 김씨인점, 다양한 유물이 고구려, 백제와는 전혀 다르고 흉노족의 유물과 유사한점, 백제고구려와 신라초기 사람들이 말이 달랐다는것, 황금에대한 애착 등등의 다양한 증거들을 갖추고있다.


한반도의 삼국시대는 북방민족의 건국시기?

기원전 57년 신라건국, 기원전 37년 고구려건국, 기원전 18년 백제건국

서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한반도 삼국은 북방민족의 지배세력이 남하하면서 건국시기를 겪는다.

북방민족들의 전투력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농경민들인 원주민들은 북방민족에 의해 지배될수 밖에없었을것이다.

북방 유목민족은 강력하다. 농경민족은 약하다. 중국본토의 한족들이 수없이 북방민족에게 지배권을 잃는것, 원나라에의해 유라시아가 폐허가된것, 말타고 뛰어다니며 전국을 통일했던 왜놈들까지 조선시대까지 말타고 다니는 야만성을 가진 세력의 전투력은 농경민족이 이길수가 없었을것이다.


북방민족은 왜 한반도로 왔는가?

민족의 이동은 대부분 전쟁이나 상대세력에 의해 배척되었을때 이주하게된다.

북족과 중국에서 배척된 사람들이 한반도로 유입되고 한반도의 사람들은

다시 신대륙 일본땅으로 건너간다. 일본고대역사는 사실 한반도 사람들의 이민사라고 볼수있다.


거북이 껍질로 점치는 방법은?

고대 중국에서 거북이 껍질을 불로 태워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천기를 읽고 정치를 해나갔다고한다. 그리고 그 해석을 거북이 껍질에 문자로 새기게 된다. 이것이 갑골문자가 발생되게된것이고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8000년경 - 신석기시대

기원전 5000년경 - 중국에 농경이 전파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 - 한반도에 볍씨출토 벼농사

기원전 3000년경 - 청동기시대 - 문명의 시작

기원전 1200년경 - 한반도 남부에 수도경작벼농사가 시작된다.

기원전 551년 - 동아시아의 성인 공자가 태어난다. 춘추시대에 성립된 유교는 2500년후까지 동아시아의 지배적인 이념이 된다. 공자의 탄생은 공자뿐아니라 제자백가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이 동아시아에 발생되고 발전하며 사상과 철학을 갖춘 고도의 국가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는것이다.

기원전 300년 - 한반도에 철기도입

기원전 200년 - 한반도의 사람들이 신대륙 일본으로 건너가 농경문화를 전파한다. 그리고 일본의 청동기 문화인 야요이시대를 열어간다.

기원전 194년 - 마한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땅에 54국의 연맹체로 일반인들의 주거형태가 초옥토실이였으며 모양이 무덤같고 출입문이 위로 나있었다고 한다 초옥토실은 반지하 움집의 원시적인 형태였을것이다. 이시기까지만해도 기와가 도입되지않아 한반도에 목조기와집의 형태는 없었을것이다. 그리고 철기가 도입되어야 비로서 주거문화의 발전이 나타난다.

당시 건축용 목재의 가공이 어려웠을것 생각해보면 왕궁이 아닌이상 원시주거형태를 벗어나기 어려웠을것이며 중국에서 톱을 발명하는것도 기원전 500년대다.

마한시대에는 우두머리가 있지만 각 읍락끼리 제어가 되지않고 천군이 제사를 지냈다고한다.


기원전 57년 - 신라건국

기원전 37년 - 고구려건국

기원전 18년 - 백제건국

372년 - 한반도에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때 전래된다. 불교는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의 통치수단이된다. 이때 소수림왕에의해 유교도 전래되고 태학을 세운다.

이시기 이후부터 왕궁과 사찰등의 목조건축술이 발달하고 황룡사, 미륵사와같은 대형 사찰이 만들어지게된다. 하지만 한국에 삼국시대 목조건축물은 남아있는것이 없다고한다. 가장 빼어난 건축술을 가졌던 백제의 장인들이 일본으로 피난을가서 일본에 많은 건축물을 남겼고 모두 보존되어있다. 

381년 -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오래된 강화도 전등사가 창건된다.

300~475년 - 서울 방이동 일대에 백제 고분들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발견된 백제 유물을 보면 다양한 토기가 만들어지고 기와가 발견된다. 백제는 이곳에 몽촌토성을 쌓고 성안에 기와집을 만들어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이시기에는 검은색 무쇠같은 검은간토기가 나타난다. 이시기는 철기 초기시대다.


500년 - 가야의 주거 형태는 왕궁도 초가집으로 기와집이 전혀 없었다고한다. 철을 수출하고 제철기술이 발달해있던 가야가 멋진 철기갑옷들이 수두룩해도 주거형태는 발전하지 못했던것으로 생각되는부분이다. 


660년 - 신라와 당이 동맹을 맺어 나당연합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하게된다. 이때 당나라와 신라의 관계에서 중화사상이 들어오고 군신관계가 시작된다.

이때 나당연합군에 의해 궁지에 몰린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이 바다를 건너 신대륙 일본땅으로 건너가 아스카시대의 주도세력이된다.

posted by 오픈아크 리더스 오픈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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