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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21:04 History

세계에서 천체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어디일까?

현재는 미국의 NASA정도 될까?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천문학 관련된 한국의 유물은 세계적이다.

1.첨성대 - 세계최초의 천체관측소

2.천상열차분야지도 - 세계두번째 천체지도

3.고인돌 - 선사시대 별자리 기록

<천상분야열차지도>

한국은 기원전 2500년경 한반도에 고인돌을 세운다.

한반도 고인돌은 청동기 유물이라고 하는데 

고인돌이라는 유물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고인돌은 부족이나 집단의 지도자가 사망한후 그 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것이다.

이것은 문명과 정치등 인류의 발전에서 굉장히 상위개념이 존재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세계의 고인돌중 70%가 한반도에 존재한다.

한반도의 인류문화가 얼마나 우수한지 알수 있다.

<평창올림픽개박식에서 펼쳐진 증강현실 천상열차분야지도>


그렇다면 어떻게 돌에 구멍을 뚫었을까? 인간이 돌에 정확한 구멍을 뚫기위해서는 돌보다 단단한 도구가 있어야하는데

아무래도 청동으로 만든 도구가 필요했을것이다. 전문가가 아닌지라 조사해보면

이집트에서 발견된 돌항아리 제작법을 보면 청동으로 드릴을 만들어 암석을 파내고 연마해서 통으로된 돌로 그릇과 항아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청동 도구가 있었다면 바위에 별자리를 세길수 있었을것같다는 추론이다.

그러니 청동기시절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위스 바쉐론콘스탄틴에서 제작한 천상분야열차지도 시계>

그런데 문제는 저런 고인돌에 우리 선조는 별자리를 세겨놓았다.


대표적인 고인돌 별자리

기원전 1500년경의 함남 함주군 지석리 고인돌

기원전 500년경의 아득이 고인돌의 돌판

기원후 6세기 초 고구려시대 무덤인 진파리 4호분에 그려진 별 


한반도에 고인돌이 만들어지는 시기는 고조선시대고

고조선 이후 부여의 세력이 한반도 아래로 남하하면서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국가로서 발전한다. 부여 이후 시대는 철기시대로 분류된다.

<첨성대 정상에 올라가 관측했을것이라는 추론이다>

고조선과 부여는 만주와 연변지역을 중심기반으로하는데 이시기 한반도에서는 

국가보다는 부족으로서 고인돌을 만들어가며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는것이된다.

그리고 그 세력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고인돌에 별자리를 새겼을것이다.

이런 민족적 천체에 대한 지식은 첨성대를 만들게 되고 훗날 천상열차분야지도까지 이어지게된다. 이후에는 천체와 우주에 대한 발전이 서양으로 옮겨지게 된다.


천문학이 발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문학은 종교와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중에 농사의 경우 한반도는 기원전 1000년쯤 시작되었다고 하고 일본은 기원전 2000년쯤 시작되었다고한다. 하지만 고양시 가와지 볍씨가 발견되어 연구중인데 인정될경우 신석기부터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된것이 된다.

이럴경우 한반도의 농사 역사는 신석기로 올라가 기원전 3000년전부터 시작된것이된다.

<천문학유적에대한 아무런 생각이없던 시절>

고대국가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고대를 넘어 산업혁명이전까지 국가의 최대 과제는 식량의 생산량이다.

유목생활을 멈추고 정착할때 농경이 시작된다. 

농경은 잉여생산을 만들어내고 잉여는 계급을 만들어낸다.

지도자계급은 농경의 풍요로움을 책임진다.

하늘에 재사를 지내고 점을치는 주술활동을 한다.

계절변화를 알아야하기에 하늘을 관찰하여 별자리를 관찰한다.

음력달력을 만들어 절기별로 계획적인 농사를 시행한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이것은 농기구 발달의 역사와 같다. 도구의 발달과 절기, 달력의 발달의 국가의 의무와도 같은것이다. 농기구의 발달의 생산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생산량의 풍요는 군주의 최대 축복과도 같은것이다. 하지만 청동기 대표유물인 비파형동검의경우 농기구로는 사용을 하지 않았다고한다. 워낙 청동금속이 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초의 천문대 첨성대 사용법을 아직도 정확하게 알수 없다.>

우리는 구대국가인 고조선의 역토를 어떻게 확인할까?

청동기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유물이 퍼져있는 지역을 고조선의 영토로 생각한다.

그 대표유물은 비파형동검과 탁자식 고인돌, 미송리형 토기가 발견되는곳을

고조선의 영토로 인정하는것이다.

고조선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할까?

고조선이 실제로 존재했는가는 고려시대에 쓰여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우리 역사로 적혀져 있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서에 나타난 조선과의 교역, 정치 등에 관한 기록으로 확인되는 부분들이다.



posted by 오픈아크 리더스 오픈아크
2017.06.15 18:30 History

극동아시아를 이해하려면 유교를 알아야한다.


특히 중국은 유교, 공자의 사상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자식은 어버이를 섬기고, 백성은 임금을 섬겨라!

이런 간단한 원리로 군주에게 충성하도록 어린 백성에게 가르치고 계급사회를 유지해간다.

성리학이 조선을 망쳤다. 향교,서원,정사의 차이, 정약용과 일본의 양명학 발전


국가의 통치방법은 2가지가 있다.


1.종교가 통치이념이다.

과거에 통치이념은 신을 만들어놓고 모든 백성은 신앞에 아무것도 아니며 신에게 복종해야한다. 그리고 임금은 백성을 대신해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신의 대리자이니 신과같이 섬겨라. 이것이 기본적인 패러다임이다.

종교가 통치이념이고 법이다. 이건 문명시대의 고대방법이다. 신화의 시대가 이런 통치이념이다.


2.통치는 유교로 상징은 불교

유교는 어버이, 부모와 자식관계를 강조하는 이념이다. 그리고 그맨꼭대기에 왕이있다. 절대로 배신하거나 넘보아서는 도덕과 윤리의 정점에 임금이 위치한다. 하지만 상징이  부족하다. 그래서 필요한것이 종교인데 그부분을 동아시아는 불교를 사용했다.


동아시아는 유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사용한다.

어떤 종교든 어떤 통치이념이든 백성을 대신하여 최고 왕이 제사를 지내는 공통점이 있다.


통치이념이라는것은 왕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견제하기에 가장 좋은 구실을 한다.


조선초기에는 정치는 유교, 종교는 불교였으나 억불정책을 통해 불교를 약화시키고 유교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남아있는 유적을보면 유명사찰은 고려시대가 많고 조선시대 사찰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는 대부분 서원이다.



성리학이 조선을 망쳤다. 향교,서원,정사의 차이, 정약용과 일본의 양명학 발전

▲향교는 국립학교로 서원보다는 규모가 작은편이다.

향교 -  고려시대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계승된 지방 교육기관으로서 국립 교육기관

향교의 중심에는 공자상이 모셔지는 유교학교다.

성리학이 조선을 망쳤다. 향교,서원,정사의 차이, 정약용과 일본의 양명학 발전

▲도산서원으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지금의 강남사립고 수준이라고 볼수있다.

서원 -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

향교와 서원은 사립학교와 국립학교로 볼수 있는데 서원의 경우 지방세력이 서원을 중심으로 세력화 한다. 서원이 정치에 참여하고 세력화하자 특권을 사용하는 세력이 되자 흥선대원군에 들어서면 서원을 철폐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시대는 바로 이들에 의해 농락당한 역사이며 임진왜란이나 조선말기의 위기도 썪어빠진 사림들의 사대정치에 의한 치욕적인 역사가 된다.


과거시험 과목과 향교,서원에서 배웠던 과목

소학-어린 아이들 또는 유교 입문자에게 초보적인 유교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교육서 ,송나라의 대학자 주자가 엮은 것이라 되어있지만 실은 그의 제자 유자징이 주자의 지시에 따라 편찬한 것이다.


가례-오례(五禮)의 하나. 왕가(王家)에서는 왕의 성혼이나 즉위, 또는 왕세자ㆍ왕세손ㆍ황태자ㆍ황태손의 성혼이나 책봉 따위의 예식을 이르고, 사가(私家)에서는 관례(冠禮)나 혼례를 이른다.


근사록-주희(朱憙)와 그 학문적 친교가 깊었던 여동래(呂東萊) 두 사람의 합작(合作)이다. 이 서(書)는 북송 시대 도학(道學)의 대표적 사상가인 주돈이, 장횡거(張橫渠), 정명도(程明道) 및 정이천(程伊川)의 저술(著述)·어록(語錄)을 발췌하여 편집한 것이다.


사서오경-사서오경(四書五經) 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유교의 교육 및 교양 서적으로, 유교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책이다.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하고,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한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유신에 성공했던 이유중 한가지는 성리학의 역사가 짧은 이유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주자학이 에도시대에 되어서야 힘이생기는데 관학의 지위에 오르고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양명학으로 발전한다.

성리학이 조선을 망쳤다. 향교,서원,정사의 차이, 정약용과 일본의 양명학 발전

▲풍림서원 규모는 작지만 과학고수준의 교육기관이다.


정사 - 정사는 출중한 유학자가 만든 학원이다. 그렇다보니 서원보다 수준이 놓은 곳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자립형사립고정도 된다.


기원전 551년 노나라에서 공자가 태어난다.

기원전 37년 고구려 건국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때 유학교육기관인 태학설치, 이때 불교도 고구려에 처음 들어온다. 

589년 중국 수나라~당나라까지 불교가 최고의 정치수단이된다.

918년 왕건이 고려건국- 고려는 초기에는 불교국가에 가까웠고 6대 성종 992년이 되면 유학을 장려하고 국자감을 설치하고 경학박사를 두었다.


이때가지는 유학보다는 불교에 비중이 높았다. 조선으로 넘어오고 성리학이 만들어지면서 주도권은 완전히 성리학으로 바뀌게된다.


12세기 남송의 주희가 유교를 집대성해 성리학을 만든다.

1280년경 고려의 안향이 송으로부터 성리학을 들여온다.

1368년 주원장이 원을 몰아내고 명을 세운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건국하면서 성리학을 따르는 동시에 명과 조선은 군신관계가 성립되어버렸다.


조선시대 내내 문제가되는 사대관계의 성립니다. 명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사고방식은 500년간 지속되고 바로 그 마음이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이어진다. 자주국방을 할수 없었던 비운의 역사가 조선의 건국과함께 시작된다.


임진왜란 이전의 왕 - 건국부터 임진왜란이 나기전까지 명이 건재한상태였기때문에 왜침이 거의 없었다.

태조(6년)이성계-정종(1년)-태종(18년)이방원-세종(32년)-문종(2년)-단종(3년)-세조(13년)-예종(1년)-성종(25년)


연산군(12년)-중종(38년)-인종(1년)-명종(22년)-선조(41년)


조선건국한 태조이성계부터 세종까지는 정몽주의 영향권이다.

그리고 이방원까지는 고려로부터 과도기였다. 


1490년 양명학이 떠오른다. 양명학은 주자학은 군주들의 황권, 왕권 강화의 재료로써 전락됐다. 그래서 주자학은 도덕적인 측면이 없어져 갔다. 그 도덕윤리를 다시 되살리려는 노력을 한 학자가 바로 왕수인이다. 성리학, 주자학의 단점을 보완한것이 양명학이다. 조선은 이황, 유성룡과 같은 학자들이 비판하면서 강하게 배척되었다. 이런 양명학을 받아들인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일본에서는 양명학이 반체제적인 성격을 가져 혁명가들이 주로 양명학을 연구하기도 했으며, 또는 양명학을 연구하게 되면 혁명적인 지향이 되기 쉽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명학 역시 일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양명학을 배척한 나라와 수용한 나라의 차이가 일본의 메이지유신이후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후 양명학이 쇠퇴했던 중국은 일본의 성공이후 역수입되었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왜가 조선에 정명가도를 주장하며 명으로가는길을 열어달라고 하니 조선은 군신관계로 주군에게 가는길을 열어달라는 일본의 요구는 따를수가 없다. 선조는 신의주로 도망가고 결국 명의 군대가 와서 왜를 제압한다.


1616년 청나라 건국


1636년 병자호란 발생 - 청과 조선의 전쟁이 벌어진다. 

청나라는 여진족의 나라고 명나라는 한족의 나라인데 청이 명과는 끊고 청과 군신관계를 이어갈것을 요구하자 조선이 거부한다. 청이 명을 공격하면 조선이 청을 공격할것에 대비해서 먼저 조선을 침략한다. 쉽게 말해서 명과 조선은 유교국가로서 동맹국으로 볼수있다. 다시말하면 조선은 명의 자식되는 국가다.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한다. 주군이 사라졌다.


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정조

1623년~1800년까지 180년간 주군이 사라진 조선은 7명의 임금이 이끌어나간다.

선조이후로 조선은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어버이의 나라 명나라가 멸망하고 성리학의 종주국은 사라졌다. 일본은 양명학으로 발전했지만 조선은 어전히 성리학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은 정체성을 잃었고 세도정치로 변화했으며 대신들의 국정농락이 300년간 이어지는 기묘한 국가가된다.


인조-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했고 조선은 쑥대밭이된다.


효종 -병자호란후 인질로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와 복수심에 북벌론을 펼친다. 최고권력자:송시열

송시열이 항상 주자를 언급하자 효종은 '말마다 옳은 이는 오직 주자이며, 일마다 옳은 이가 오직 주자이십니까'라고 반문했다 한다. 바로 이 송시열과 효종의 일화가 조선의 이념이 어떠했는지 알수 있다. 오로지 성리학


현종-아버지 효종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을때 심양에서 태어난다. 불벌론은 결국 폐기하고 군사력을 조금 강화한다. 이때까지도 송시열이다. 


숙종-아버지 현종이 병약했다면 숙종은 조선역사에서 왕권이 가장 강한 시기라고 한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의 혼란을 정리한 왕이다.


경종 - 7년이란 시간동안 잠시 있다가 병으로 죽는다.


영조 - 노론과 소론의 중재와 공정한 등용, 탕평책을 통한 당쟁의 완화, 악형과 인습의 폐지와 문예 부흥을 높이 평가받는다. 


정조 - 홍국영에 의해 세도정치


1762년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다.

정조와 정약용은 조선개혁의 기회를 모두 놓치고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일 기회까지 잃어버리며 근대국가로서의 변화에 실패한다. 이시점이 가장 안타까운 대한민국 변화의 역사의 순간이다.


순조-헌종-철종-고종-순종


정조가 죽고 순조부터 순종까지 이어지는 100년역사는 너무나 치욕스러워서 말할수조차 없다.

그리고 1567년 선조부터 마지막 순조까지 이어진 350년간의 붕당정치는 사림들의 세력지키기와 확장, 교체해나가는 시대로 매우 암담한 근세역사다.

정조가 죽고 11살의 순조가 왕위에 오른다. 순조는 고양이에게 맞겨진 생선이였다. 순조부터 시작되는 시기가 바로 안동김씨의 시대다.


1800년 천주교 박해

당시 상황을 알려면 정약용의 천주교 이야기를 보면 알수있는데 천주교로 개종한 정약종은 1801년 천주교신자를 처형하는 신유박해때 순교하게 된다. 하지만 정약용과 둘째형 정약전은 천주교를 다시멀리했다고 유배로 감형시켜준다. 조선 말기에까지 성리학은 이렇게 패쇄적이였다. 실학을 주장하던 정약용도 결국 배척대상이였던것이다.

당시 천주고가 매우 확장하던 시기고 정조의 부인과 며느리까지 천주교를 믿어 유배된다.


앞으로 40년뒤 1840년 영국은 아편전쟁으로 중국을 침략하고 일본은 중국이 당하는것을보고 긴장하여 메이지유신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성리학자들의 권력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1840년이면 헌종이 즉위하던시절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를 하고며 나라를 망쳐놓은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조선은 중전이 어떤가문인가가 매우중요한데  순조, 헌종, 철종 세 임금의 중전이 안동 김씨가문에서 나오게된다. 더군다나 이시기엔 세도정치가 난무한 엉망진창의 조정이였다.


국방,외교 없이 내무부에서 돈빼먹기 바쁘던 시절이다.


이러다가 사단이 나는것이 동학농민운동이다. 도저히 눈뜨고는 볼수없는 상태, 조선은 사실상 끝이났다.

동학 농민 전쟁은 1894년 동학 지도자들과 동학 교도 및 농민들에 의해 일어난 민중의 무장 봉기로 조선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변화를 감지해 주도하였다면 일본처럼 천하를 지배했겠지만 조선은 주구장창 변화의 압력이 목을 조여오는데도 성리학을 따지며 우물안 개구리들이 자리를 놓고 싸웠다. 한심하기 짝이없다.


성리학의 모순을 세도정치로 덮어버린 암울했던 조선의 역사다.


성리학을 국가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성리학적 사고에 충실한 나머지 중국을 어버이의 나라로 사대주의에 빠져버렸다. 그렇다보니 임진왜란을 해결해준것도 

posted by 오픈아크 리더스 오픈아크
2017.06.13 17:30 History

덴노와 쇼군의 차이는?

덴노는 일왕으로 2000년넘게 그 하나의 명맥을 이어오는 상징같은것이다. 쇼군은 통치자다. 신기하게도 한번도 쇼군이 직접 자신이 덴노가 되려고 도전하지 않고 존중해왔다는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보니 일본은 125대까지 왕이 바뀌지 않은 나라임으로 나라가 침략당한 적이 없고 왕이유지되어왔다. 본인들 역사로는 기원전 660년부터라고하니 고조선시대부터 일본은 하나의 나라였다. 그렇다보니 일본은 쇼군을 가지고 시대를 구분한다.

일본역사 용어정리와 뜻, 덴노, 쇼군, 다이묘, 막부 여행전 알아야하는 역사


쇼군이란?

막부의 최고직. 통칭 '쇼군'

일본이 무사의 나라이다보니 무사가 국가의 최고자리에 오른다. 쇼군은 46대 쇼군까지 있다고 한다. 

최초의 쇼군은 1192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1대 쇼군인데 이시점부터 막부시대라고 한다. 우리식으로하면 국군통수권자다.


막부란?

고대 중국에서 장군의 지위를 받은 사람이 출정 시에 설치한 본영을 가리킨 데서 유래하였다. 일본의 막부는 1192~1868년 일본을 이끈 세습적인 군사독재정부로 전국을 전쟁터로 생각하면된다.


막부는 우리식으로 보면 사단이다. 일본국토를 각 사단장이 통치하고 본부의 명령을 따른다. 본부에는 총사령관 쇼군이 계신다. 일본의 막부시대는 온나라가 전쟁터로 해석하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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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은 쇼와 덴노

덴노란?

덴노는 천황으로 일본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토의 중심을 구성하는 사람을 부르는 명칭. 

현재 일본왕은 아키히토로 125대 덴노다. 일본 최초의 덴노는 1대 진무 천황으로 1대덴노 이전은 신대로 말한다고 한다. 1대 덴노의 제위시작이 기원전 660년이다.

기원전 660년은 일본의 조몬시대로 원주민상태의 움집에 살며 사냥하던 시대부터 덴노가 존재했다는것이다. 평균제위기간은 21년이다.

실존덴노부터 따져도 1500년이상 유지되고있는 덴노족보다.


일본의 고대역사 번성도시는?

일본의 고대역사는 아스카, 나라, 헤이안 시대가 현재의 나라현일대인 오사카와 교토지역이다. 한국의 경주가 일본의 교토지역이다.


일본의 중세시대는?

일본의 중세는 막부의 시대다. 무사들이 정권을 잡고 각 가문의 군영, 영지를 중심으로 세력다툼을하는 상태로 온나라 전쟁터라고 볼수 있다.

그리고 덴노의 힘보다는 막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의 시대라고 할수있다.

1.가마쿠라막부 - 도쿄 아래지역으로 카나가와의 가마쿠라를 수도로 사용했다.

2.겐무신정 - 가마쿠라막부 말기에 힘이 빠지고 혼탁해지자 겐무덴노가 다시 국가를 이끌기시작한다. 2년간있었던 짧은 친정기간이다.

3.남북조시대 - 일본의 덴노가 2명이된 시대로 50년정도 있었던 시기다.

4.무로마치막부 - 무로마치막부는 교토 인근은 현재 오사카지역을 본거지로 하는 세력이다. 240년간 일본을 통치하고 분해된다.

5.전국시대 - 무로마치가 해산되고 전국시대가 열린다.

6.에도시대 - 에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금의 도쿄를 본거지로 탄생한 일본최후의 막부로 교토시대에서 도쿄로 넘어오는 시기다. 에도막부는 265년동안 일본을 통치한다.


일본의 입헌군주제란?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란 헌법 체계 아래서 세습되거나 선임된 군주를 인정하는 정부 형태이다.

일본역사 용어정리와 뜻, 덴노, 쇼군, 다이묘, 막부 여행전 알아야하는 역사


번이란?

번은 행정구역으로 제후가 다스리는 영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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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묘란?

일본 중세 시대의 지방 영주를 뜻하는 단어이다.


일본의 고대역사기의 덴노?

일본이 그래도 아스카, 나라, 헤이안시대에는 덴노가 통치하는 왕정국가였다.

그래서 시대구분은 덴노이름을 따서 구분한다. 이때의 일본은 불교를 백제로부터 받아들이고 율령을 반포하여 유교적 불교적 변두리 국가로 성장한다.


막부정치는?

중세로 넘어가는 막부시대로 넘어가면 덴노가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무신들의 나라가 된다. 무신들의 사고 방식,전쟁,부국강병이 그대로 일본의 막부정치에 녹아든다.

중국과 조선이 완전히 유교국가로 넘어가자

일본은 무신들의 유교국가가 된다. 이것이 막부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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